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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를 거부하는 과학교육
2014.08.22 조회 수 : 6137

원본글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49297.html

최중길 (사)대한화학회 회장·연세대 화학과 교수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경험했다. 끼니를 걱정하면서 선진국을 부러워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후진국을 도와줄 수 있는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석유제품, 반도체, 자동차, 선박, 평판 디스플레이 같은 공산품의 수출을 기반으로 얻어진 국가경쟁력 덕분이다. 물론 공짜로 얻어진 성과는 아니다. 기둥을 뽑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 교육은 포기할 수 없다는 뜨거운 교육열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공계’가 중요하다는 사회적 풍토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이제 선진국으로 가는 마지막 문턱을 넘기 위해 우리 사회를 ‘빠른 추격자’에서 ‘창조적 선도자’로 탈바꿈시켜야만 한다. 다시 한번 이공계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정부가 국민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에 접목하여 새로운 산업과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공교육은 거꾸로 가고 있다. 얼마 전 ‘벼랑 끝에 선 과학·수학 교육’을 주제로 연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원탁토론회에서는 교육부가 성급하게 마련하고 있는 이른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통합형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연구위원회가 과학기술 기반의 창조경제를 추구하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결론이었다. 공과대학을 창조경제의 전진기지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대통령의 요구는 물론이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모두 필요하다는 교육부 장관의 요구도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학생의 자율·선택권과 학습부담 경감을 핑계로 국가와 사회가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과학기술 소양의 교육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위원회가 문·이과 통합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과 폐지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 과학 교육의 현실은 참담하다. 인문·사회계 진학생의 과학적 소양은 중학교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과 학생들이 어렵고 재미없는 수학·과학을 포기하도록 허용해주는 잘못된 교육과정과 수능 체계 때문이다. 이공계 진학생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이공계 신입생들이 대학 교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학력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수준으로 약화되어 있는 과학 교육을 더 약화시키면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와 공과대학 혁신은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현실 인식이 놀라울 정도로 안이하다. 원탁토론회에 참석한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과정에 보장된 자율·선택의 범위 안에서 충분한 과학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교육과정에서 허용되는 자율·선택권은 수능 중심의 대학입시제도에 의해 극도로 왜곡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계의 원로가 공개적으로 인정했듯이 최소한의 과학시간마저도 수능 준비로 전용되고 있다.

선진국의 교육정책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수학·과학 교육 강화를 위해 매년 30조원을 투자하고 있고, 영국도 영어·수학·과학을 ‘핵심교과’로 강화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과학을 국·영·수의 2배 가까이 가르친다. 달 탐사선 옥토끼를 성공시킨 중국의 저력은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섣부른 교육과정 개편은 미래 사회에서 학생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하고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독배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교육과정 개편은 교육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중차대한 과제다. 과학기술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참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만 한다.

최중길 (사)대한화학회 회장·연세대 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