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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꼬일 대로 꼬인 대입 정책 차라리 일본을 배워라!
2018.07.25 조회 수 : 4033

원문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2&nNewsNumb=002517100008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수도권 지부 회원들이 지난 7월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입시개혁을 포기한 교육부의 대입제도개편 공론화 과정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작년 9월 극심한 논란 끝에 결정을 유예시켰던 대학입시 개편 작업이 다시 시작되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령에 따라 구성된 국가교육회의 산하에 대입제도 개편을 전담하는 ‘특별위원회’와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었고, 공론화 작업을 수행할 550명 규모의 시민참여단도 꾸렸다. 교육부가 당초 국가교육회의에 의뢰했던 수능 과목의 시안도 공개했고, 학생부 개편안도 내놓았다. 이제 국가교육회의가 공론화를 통해 4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를 선택해주기만 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학습 부담을 줄여주고, 입시 경쟁을 완화시켜줄 ‘환상적인’ 대입 개편안을 8월 말에 확정·발표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희망 사항이다.
   
   대학입시 개편이 볼썽사납게 꼬여버린 것은 ‘수능 절대평가’라는 안이한 대선 공약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과열된 대학입시가 국가의 미래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진 저출산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이 문재인 대선 캠프의 현실 진단이었다. 저출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 부담을 줄여주고, 과열된 입시 경쟁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대선 캠프의 판단을 나무라기는 어렵다. 그러나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시켜서 치열한 경쟁의 원인인 ‘점수’를 없애버리면 대학입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대선 캠프 교육 전문가들의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하고, 비현실적인 꿈이었다.
   
   절대평가로 전환되는 수능은 어쩔 수 없이 변별력이 줄어들고, 전형 요소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줄어들거나, 입시의 경쟁이 완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변별력이 남아 있는 다른 전형 요소에 매달려야 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의 안타까운 숙명이다. 그래서 상대평가로 남게 되는 국어·수학·탐구에 대한 경쟁이 과열되고, 공정성이 의심스러운 내신에 대한 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작년 8월 교육부가 섣부르게 내놓았던 수능의 절대평가 안에 대해 모두가 격렬하게 반발했고, 결국에는 개편안 확정을 유예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대선 캠프의 교육 전문가들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상식을 외면했었던 셈이다.
   
   단순히 부담이 과중하고, 경쟁이 치열한 것이 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이 감당해야 하는 훈련의 부담은 아무나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림픽 경기에서의 경쟁도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치열하다. 그렇다고 훈련 부담을 줄여주고, 경쟁을 완화시켜줘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치열한 경쟁을 위한 혹독한 훈련을 기꺼이 감수해낸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승리와 크로아티아의 선전에 전 세계가 열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부담 경감과 경쟁 완화의 환상
   
   대입의 경우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학생의 노력에 비례해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학습 부담은 절대 문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모든 학생들에게 힘들더라도 미래의 더 큰 발전을 위해 기꺼이 견뎌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비비 꼬아놓은 수능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한 문제풀이 능력을 익히기 위해 밤잠을 포기해야 하는 부담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저자조차 알 수 없는 EBS 수능 교재를 무작정 외워야만 하는 부담도 마찬가지다. 수능 문제를 푸는 요령과 수능 교재를 암기하는 능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는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부담일 뿐이다.
   
   경쟁이 치열한 것도 반드시 문제라고 할 수 없다. 경쟁의 규칙이 충분히 공정하고, 충분히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 문제일 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가르치지도 않는 아랍어로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수능은 절대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수능에서 어떤 과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버리는 상황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학생의 능력이나 노력보다 학부모의 정보력과 재력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막중한 위력을 발휘하는 수시에서의 엉터리 경쟁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대입 개편의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부담을 줄여주고 경쟁을 완화시켜주는 것이 개편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학생들의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는 학습 부담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강화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줄이고, 없애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적정한 부담과 합리적인 경쟁은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민주화된 통일 조국을 이끌어 갈 미래 세대를 부담과 경쟁을 두려워할 정도로 나약하게 키울 수는 없는 일이다.
   
   
   무려 93개에 이르는 선택과목들
   
   사실 작년 8월까지 대학입시 개편안을 확정해야만 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2015년에 확정되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가’형과 ‘나’형으로 구분된 현재의 수능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본래 교육부는 교육과정을 개정한 다음 해인 2016년에 ‘문·이과 통합형 수능’을 확정·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맞는 수능을 개발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교육과정에 반영된 문·이과 통합이 형식에만 그친 것이었고, 현재의 수능이 진정한 ‘대학수학능력시험’과는 거리가 먼 ‘짝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그랬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탄생했다. 그 뿌리는 학생들이 6·25를 ‘북침’이라고 믿고 있다는 황당한 여론조사 결과를 핑계로 상식을 벗어난 ‘역사 교육 정상화’를 밀어붙였던 2013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의 엄중한 지시였던 한국사 교육 정상화를 추진하는 묘책으로 느닷없이 교육과정의 ‘문·이과 통합’을 들고나왔다. 모든 학생을 인문·사회·과학기술의 기초 소양을 두루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로 길러내자는 제안으로 한국사의 필수화에 대한 반발을 에둘러 차단해버리는 교묘한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략이었다.
   
   문과와 이과를 아우르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길러내자는 목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융합을 강조하는 21세기가 요구하는 교육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자기관리·지식정보처리·창의적 사고·심미적 감성·의사소통·공동체 역량을 키워주겠다는 취지도 훌륭했다. 그러나 개정된 교육과정의 실제 내용은 총론에서 강조하는 화려한 인재상이나 핵심역량을 구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실한 것이었다.
   
   실제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은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고 ‘창의교육’을 표방했다가 치명적인 학력저하만 초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1998년의 제7차 교육과정을 되살려낸 수준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의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제7차 교육과정의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되살려낸 낡은 시도였다. 더욱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의 내용도 1992년의 제6차 교육과정에서 처음 개발했던 ‘공통사회’와 ‘공통과학’보다 조금도 개선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문·이과 통합형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학생들의 소질·적성·진로에 따른 문·이과 구분 교육의 틀이 고스란히 남겨졌다는 사실이다. 제6차 교육과정에서 경쟁적으로 시작된 ‘과목 쪼개기’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다. ‘일반선택’과 ‘진로선택’으로 구분된 선택과목의 수가 무려 93개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일반선택으로 분류되는 ‘사회’에는 ‘한국지리’ ‘세계지리’ ‘세계사’ ‘동아시아사’ ‘경제’ ‘정치와 법’ ‘사회·문화’를 비롯해 9개 과목이 포함되었고, 진로선택에는 ‘여행지리’ ‘사회문제 탐구’ ‘고전과 윤리’가 들어갔다. 그러나 ‘과학’의 사정은 정반대였다. 일반선택에는 ‘물리학·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I’의 4과목이 들어가고, 심화과목인 ‘물리학·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II’는 ‘과학사’ ‘생활과 과학’ ‘융합과학’과 함께 진로선택으로 밀려나버렸다. 심지어 현대 수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하’도 학생들이 어려워한다는 이유로 진로선택에 들어가 버렸다.
   
   결국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을 위한 문·이과 통합형이 아니라 사범대학의 교과 이기주의가 극대화된 기형적인 ‘문·이과 구분형’ 교육과정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특히 2009년 교육과정에서 진정한 문·이과 통합을 위한 새로운 시도였던 ‘융합형 과학’은 물론이고, 이공계 대학에서 필수과목으로 인식하고 있는 심화과목(물·화·생·지 II)과 수학의 ‘기하’가 자동적으로 수능의 대상에서 빠져버리게 됐다. 이공계의 입장에서 2015년 교육과정을 ‘이과 죽이기’라고 부르는 것을 탓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사범대 교과 이기주의의 폐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학생들에게 모든 과목을 암기하도록 강요하던 ‘학력고사’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1993년에 처음 도입한 것이었다. 선진국의 통합교과적이고 탈(脫)교과적인 고등 정신능력과 함께 학생들의 종합적 이해와 논리적 사고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시험이라는 것이 당시 교육 당국이 밝혔던 거창한 꿈이었다. 심지어 수능을 통해 입시에 종속되어 있던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주장도 있었다. 미국의 SAT를 흉내 내서 학생들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겠다는 비현실적인 계획은 난이도 조절에 철저하게 실패함으로써 도입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폐기돼버렸다.
   
   그런데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전혀 무관한 언어·수리탐구·외국어로 구성되고, 문·이과 구분도 없었던 ‘진짜’ 수능은 1994년까지 3회로 막을 내렸다. 교육부가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교육 현장과 교과 이기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사범대의 조직적인 반발을 이겨내지 못한 결과였다. 오늘날 우리가 ‘수능’이라고 알고 있는 시험은 모든 면에서 과거의 ‘학력고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양으로 변질된 ‘짝퉁’ 수능이다.
   
   지금의 수능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으로 짐작되는 일부 과목을 선택해서 빠른 시간에 정답을 골라내는 사교육 시장의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지난 20여년 동안 교육부와 교육 전문가들의 의도적인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아왔던 셈이다. 지금도 수능을 관리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의 탈을 쓴 엉터리 학력고사를 ‘수학 능력을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는 최고의 시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능이 정체성만 상실해버린 것이 아니다. 교육 전문가들의 고약한 과목 이기주의 탓에 시험의 영역과 교과목이 끊임없이 늘어났고, 사라졌던 문·이과 구분도 다시 시작됐다. 원점수·총점·백분위·표준점수·변환표준점수·영역별 등급 등이 총동원된 성적 표기방식의 변화는 추적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변화를 거듭했다. 이제는 절대평가까지 등장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지난 24년 동안 평균 2년마다 개정을 했고, 지난 4년 동안은 매년 개정을 거듭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결과적으로 중3·고1·고2·고3이 모두 서로 다른 수능을 치러야 하는 형편이다. 과연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능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이제 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누더기 짝퉁’으로 변질돼버린 수능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 단순히 정시와 수시의 비율을 조절하고,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수시의 최저학력 기준을 없앤다고 수능을 되살려낼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수능의 교과목을 변경하고, 출제범위를 조정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국가가 관리하는 수능의 어설픈 ‘객관성’과 ‘공정성’은 환상일 뿐이다. 객관식 수능이 공교육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 김영란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장이 지난 5월 제2차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유토리 철학 폐기해버린 일본 교육
   
   시대적 요구인 융합과는 정반대로 학생들에게 ‘문과’와 ‘이과’의 낙인을 찍어버리는 문·이과 구분을 제거하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교과목의 구조를 개편하는 것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비현실적으로 세분화된 교과목을 과감하게 줄이고, 전문가 양성 교육에나 쓸모가 있는 ‘개념’ 중심의 어설픈 교육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이과 교육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기둥인 과학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일깨워주고, 과학기술 사회를 향유(享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과학자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에게는 수능과 관계없이 심화 과학 과목과 ‘기하학’을 배울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한다.
   
   50만 학생들의 수학 능력을 5지선다의 과목별 객관식 문항으로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근원적으로 작동이 불가능한 것이다. 과목별 난이도 조정이 불가능한 현실을 무시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변환표준점수’를 강요하는 어설픈 제도도 확실하게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과연 21세기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수능이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21세기의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자신들이 만들었던 문·이과 구분 교육과 유토리(餘裕) 교육철학을 과감하게 폐기해버린 일본 ‘교육재생위원회’의 노력을 심각하게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유토리 교육철학은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양을 줄여서 여유를 갖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으로 1970년대 말 일본이 도입했고 우리는 1997년 7차 교육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의 교육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학습부담 경감’이 바로 유토리 철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 일본은 폐기해버린 낡은 철학이다.
   
   지난 2013년 일본 ‘교육재생위원회’가 만든 교육 개혁안의 목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토론식 수업과 논술·서술식 평가가 적극 도입될 예정이다. 2020년 초등학교, 2021년 중학교, 2022년 고등학교에 새 교육과정이 적용되며, 대학입시도 우리의 수능 같은 ‘대입센터시험’이 2020년 폐지된다. 객관식 시험 대신 ‘대학입학공통시험’을 도입해 지식 활용 능력을 묻는 형태로 국어·수학 과목에서 서술형 문제가 일부 출제되며 2024년도 지리·역사·윤리·과학 과목에서는 논술 문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일본 교육재생위원회의 료지 노요리 위원장은 과거 필자도 참여해 만들었던 우리의 ‘융합형 과학’ 교과서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교과서는 우리 교육현장에서는 이미 폐기해버린 지 오래다.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수능, 교육 개혁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론화에 대한 과도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작년의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활용했던 공론화의 성과는 결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었다. 550명의 시민참여단이 복잡한 이슈들이 마구 뒤섞인 대입 개편의 ‘시나리오’를 단 2회의 숙의를 통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일 뿐이다. 정작 학생을 선발하는 주체임에 틀림이 없는 대학의 의견은 철저하게 차단해버린 공론화의 결과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교육부의 인적 쇄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