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

학회소식언론에 비친 KCS

언론에 실린 대한화학회 관련 뉴스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게시물에 대한 문의사항은 office@kcsnet.or.kr 메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과 내일/방형남]이어도 기지를 만든 영웅들
2012.03.19 조회 수 : 6106

관련링크 : http://news.donga.com/3/all/20120316/44827418/1

 

김시중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요즘 감기로 목이 좋지 않지만 기분은 날아갈 듯하다.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주장이 역설적으로 자신이 장관 재임 시절 틀을 잡은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가치를 다시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미래를 예견하고 국익을 지키는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느낀다.

김시중·이동영·심재설의 大計

김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 2월 취임 직후 방문한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이어도 기지 건설 계획을 보고받았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이던 이동영 박사였다. 그는 1991년부터 기지 건설을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은 일단 보류 지시를 내리고 과기처 차원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김 전 장관은 먼저 기지 건설에 대한 정부의 컨센서스를 모았다. 국방부를 비롯한 8개 관련 부처의 의견을 물어보니 모두 건설에 동의했다. 김 전 장관은 힘을 얻어 1994년 초 정재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예산 배정 약속을 받아냈다.

해양연구원의 당초 계획은 소박했다. 수중암초인 이어도에 쇠파이프를 박아 무인 관측소를 설치하는 수준이었다. 김 전 장관의 스케일은 달랐다. ‘기상 및 해양 관측, 자원 확보, 영토 획정 등에 두루 기여하게 될 기지를 초라하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이왕 기지를 만들 바에야 사람이 머물 수 있도록 해야지. 신속하고 안전한 왕래를 위해 헬기장도 만들어야지’ 싶었다.

역사는 절묘한 만남을 통해 이뤄진다. 김 전 장관과 이동영 박사의 만남은 학자의 아이디어를 국가사업으로 발전시켜 이어도와 이어도 주변 수역을 외국이 넘볼 수 없는 곳으로 바꾸었다. 이어도 기지 건설에는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토목공학 박사인 심재설 해양연구원 기후연안재해연구부장이 초기부터 이 박사의 기지 건설 계획에 동참했다. 1994년 기지 설계가 완성됐다. 김 전 장관은 해양법 권위자인 박춘호 고려대 교수의 도움으로 유엔 등 국제기구와 외국의 반응을 타진했다.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가까운 곳에 관측기지를 건설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호의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내친김에 주한 중국대사관과 일본대사관에도 기지 건설 계획을 통보했다. 두 나라도 아무런 반발을 보이지 않았다.
이어도 기지 건설에 모두가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제주도민의 반대가 심했다. 주민들은 ‘피안의 섬’ ‘환상의 섬’으로 생각하던 이어도에 어떻게 쇠말뚝을 박느냐고 했다. 해양연구원은 주민 설득작업을 펴면서 기지 건설 작업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는 전략으로 반대의 문턱을 넘어섰다. 1998년부터 사업 책임자로 기지 건설을 지휘한 심 부장은 10여 차례나 제주도를 찾아 교수들과 민속학자들을 설득했다. 공사업체 선정 문제로 지연되기는 했지만 이어도 기지는 2003년 5월 바다 위 36m 높이로 솟아올랐다.

국민을 誤導하는 短見의 정치 한심

미래를 내다보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끈질기게 추진한 영웅들 덕분에 한국은 이어도 기지를 갖게 됐다. 김 전 장관은 “중국의 국력이 급팽창한 지금 상황에서 시작하려 했다면 이어도 기지 건설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이 쏟아내는 공약 가운데 이어도 같은 사업이 몇 개나 될까. 김 전 장관처럼 미래지향적 정책 실현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장관이 지금도 있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파들은 FTA의 미래 가치를 계산해봤을까. 제주 해군기지 반대파들은 기지 완성 이후 한국이 확보하게 될 안보이익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적어도 국회의원이 되려는 정치인들은 시간을 내 이어도 기지 건설 역사라도 공부했으면 한다. 눈앞의 이익을 좇느라 몇 년 앞도 내다보지 않거나 못하는 단견(短見)의 정치인들로 또 19대 국회를 맞아야 할 것인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