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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없는 융합은 공염불... 출연연 살아야 대학도 살죠
2014.01.14 조회 수 : 6392

KRICT Newsletter 원본글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rictblog&logNo=10183217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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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길 대한화학회장(연세대 화학과 교수)는 ‘뼛속까지’ 화학인이다. 그의 몸속에는 화학DNA가 흐른다. 선친에 이어 아들까지 3대가 화학을 전공했다. 

 

대한화학회는 68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最大), 최고(最古) 학술단체다. 약 7000여명 규모의 회원을 자랑한다. 역대 회장만 무려 47명이 거쳐갔다. ‘뼛속까지 화학인’인 최 회장이 2014년 한 해 국내 최고(最高) 학술 단체인 대한화학회를 이끈다. 그만큼 기대도 크지만 부담도 클 수 밖에 없다.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화학계의 과제는 무엇일까? 1월 1일 임기 시작과 함께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최 회장을 그가 몸담고 있는 연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Q. 국내 최대 학술단체 회장을 맡게 됐는데요. 감회나 각오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제가 48대 회장입니다. 1946년에 설립됐으니 68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회원수나 예산도 아마 국내 학술단체 중에는 최대 규모일 것입니다. 이런 대한화학회는 그동안 수많은 선배들의 열정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이러한 학회의 위상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Q. 올해 역점사업이 있다면, 간단하게 소개해주시지요.

 

"대한화학회에서는 봄, 가을 두차례에 걸쳐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학술대회라고 하면 의례적인 행사를 생각하기 쉬운데 화학회는 달라요. 23일 동안 진행되는데 등록인원만 2000명이 넘습니다. 여기에 비등록 인원까지 합하면 연인원 3000~4000명이 참가합니다. 그래서 대한화학회 학술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 5~6곳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른 곳은 수용인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Q. 취임사를 보니 '글로벌'도 많이 강조했습니다. 국내 학술단체의 국제협력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데요.

 

"전세계 최고 권위의 화학계 단체인 'IUPAC(International Union of Pure and Applied Chemistry)' 총회가 내년에 한국에서 개최됩니다.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면 IUPAC에서 인증을 해줘요. 우리가 자주 접하는 주기율표도 이 곳에서 등록을 관리하죠. 그만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세계 최대 화학계 행사입니다. 이 행사가 잘 열릴 수 있도록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 하구요. IUPAC에서 대한화학계가 국제적인 리더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Q.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화학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화학관련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커요. 자동차나 반도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죠. 그만큼 화학분야는 우리나라 성장동력의 핵심입니다. 또 화학은 모든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화학제품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죠. 그런데도 화학의 중요성이 그리 부각되지 않습니다. 상대적인 소외라고 할까요? 그런 게 있습니다. 화학회 차원에서도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좀 더 일상생활과 가까운, 그러면서도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노력을 더욱 경주할 것입니다."

 

Q. '창조경제'가 화두입니다. 화학계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을 텐데요.

 

"창조경제의 핵심을 '융합'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초과학이든 응용과학이든 융합에 가장 가까운 분야가 화학입니다. 화학이 없는 융합은 생각할 수 없죠. 이런 면에서 화학계가 창조경제의 중심이자 선두주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부분은 융합을 단순히 '섞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일부의 사고입니다. 섞여야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도 맞지만 무조건 섞는다고 좋은 것은 아니죠. 섞어서 시너지를 발휘하려면 각 분야에서의 뿌리가 더욱 튼튼해야 합니다."

 

Q. 최근에는 노벨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지요.

 

"기초과학을 포함해서 정부의 R&D 예산이 많이 늘어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적절하게 배분되고 있는지는 면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기초과학 분야 지원예산 전체를 합쳐도 기계나 전기전자 한 분야와 비교하면 많은게 아닙니다. 기초과학의 성장을 바탕으로 하는 노벨상을 얘기하면서 공학의 한 분야 예산보다 적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봅니다. 또 노벨상을 얘기하면서 한 사람에게 100억원 가량의 돈을 몰아주는 것도 문제입니다. 노벨상이 배출되거나, 이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려면 '풀뿌리 기초과학'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최 회장은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1987년부터 3년 동안 화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그의 첫 직장인 셈이다. 그런 만큼 화학연구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깊다. 또 정부출연연구기관, 국내의 이공계 위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Q. 한국화학연구원과 인연이 깊은 만큼 출연연을 바라보는 시선도 남다를 것 같은데요.

 

"공부를 끝내고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곳이 화학연입니다. 친정같은 느낌이죠. 저도 비록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대학으로 옮겼지만 대학이 살려면 출연연이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출연연에 있는 연구자들이 정말 좋은 대우를 받는다면 학생들도 이공계를 많이 지원하게 될테고, 그러면 대학의 연구와 학문도 더욱 활발해지게 되죠. 우수한 학생들이 출연연을 목표로 이공계에 지원하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게 바로 출연연의 활성화죠."

 

Q.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안타깝죠. 연구의 기본이 뭡니까? '자유롭고 안정된 연구환경'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바뀔때마다 출연연 정책이 바뀌니 안정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정부 정책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출연연 정책에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시대도 바뀌고 환경도 달라졌지만 초창기 KIST 설립 당시 사례를 지금 출연연 정책에도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사명감을 높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월급도 대학교수보다 더 많이 주고, 우수한 젊은 연구자들이 많이 갈수록 관련 규제도 풀어줘야 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출연연이 살아야 우리나라 이공계가 살아요. 그리고 대학도 살 수 있습니다."

 

Q. 여러 정책들이 도입되고 있지만 우수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우수한 학생들이 어렵게 연구하고, 졸업해도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연구자의 길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희 때만 해도 유학을 떠나면서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배수의 진을 친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유학길에 올랐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공부하다가, 유학을 갔다 돌아와서 의사, 약사 되는 길로 가요. 그 일도 가치있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자연과학은 정말 황폐화될 것입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의사, 약사의 길을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대학 다니다가, 혹은 대학 졸업해서 방향을 이쪽으로 선회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얼마든지 최소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화학회의 역할, 출연연 위상, 국내 이공계 기피현상 등 인터뷰 주제가 다소 심각했다. 화제를 '클라리넷'으로 돌리자 인터뷰 분위기는 훨씬 밝아졌다. 최 회장의 몸속에는 '화학DNA' 뿐만 아니라 '음악DNA'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Q. 기사를 검색하다 연주자 이름에 최 회장님의 이름을 보고 놀랐습니다. 클라리넷은 언제부터 하신겁니까?

 

"중학교 때부터 밴드부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경기고에 진학해서도 밴드부에서 악기를 연주했구요. 1988년 경기고 밴드부 OB멤버들이 모여 경기시니어앙상블(KSE)을 창단했고, 원년 멤버로 참여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연구하시는 분들이 음악을 하는 사례를 자주 봅니다. 뭔가 같은 유전자가 있는건가요?

 

"글쎄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구요. 다만 연구하시는 분들이 뭔가에 몰두하고 집중적으로 하는 걸 잘하지 않습니까. 이런 요소가 음악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Q. 요즘에는 중년이 지나면서 악기를 배우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저는 주변 분들에게 이렇게 항상 얘기합니다. '시간이 되면 나팔을 불어라'. 과거에는 '나팔 불면 폐병 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건강과 상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먹을 것 없고, 영양상태가 좋지 않던 시절의 얘기구요. 나팔을 불면 폐활량도 늘고 건강이 좋아져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악기를 하되 관악기를 하는게 좋습니다. 또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치매방지에도 좋습니다. 사실 악보를 익히고 악기를 연주한다는 게 상당한 '뇌 운동'을 필요로 하거든요."

 

지면에는 소개하지 못했지만 최 회장은 '이공계 기피 현상'을 토로하며 개인적인 '비화'도 숨기지 않았다. 그만큼 솔직하고 소박했다.

 

인터뷰는 다시 화학회 얘기로 돌아왔다. 최 회장은 끝으로 화학회의 올 한 해 역점사업 하나를 소개했다. "기초과학 분야 대학교육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고 화학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화학전공 인증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가칭 'CKT(Chemical Knowledge Test)'를 개발해 학부 졸업생을 대상으로 화학 인증시험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최 회장에게 2014년은 그 어느 해보다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